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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 16세기, 새로운 미(美)의 기준이 되다.

향(香)의 다양한 이야기

by ScentOn 2025. 2. 24.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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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새로운 미의 기준이 되다.

마젤란과 콜럼버스 등 많은 탐험가들이 미지의 세계인 동방으로 새로운 항로를 개척한 이유는 

많은 황금과 향료를 구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특히 대표 향신료로 사용되고 있는 후추나 계피와 같은 향료는 고기와 생선의 부패를 방지하며 맛을 좋게 할 뿐 아니라

페스나 콜레라와 같은 전염병을 예방하는 차원에서 약품의 원료로 사용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만큼 향료의 원재료는 가치가 굉장히 높았으며 이렇게 유입된 향료는 향수가 대중적으로 발전하는데 일조하였으며

미(美)의 기준으로 새롭게 인식되게 되었습니다.


그 후 이탈리아 1508년 피렌체에 있는 성마리베라의 도미니크회 수도사가 향료 조제용으로 아틀리에를 개최하여 '유리 향수'를 제조하여 당시 유럽의 상류층에게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1533년에는 피렌체 명문가인 메디치가의 딸 '카트린느 드 메디시스'가 프랑스의 앙리 2세와 결혼하면서 그녀의 조향사 R. 비앙코와  향수가게를 오픈하였고 이 향수샵이 세계 최초의 향수 전문점으로 향수의 메카인 이탈리아에서 프랑스로 옮겨 확장해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프랑스에 피는 꽃만큼 많은 다양한 종류의 향수를 제조하라는 명을 내렸다고 합니다.






18세기, 향수의 전성기를 맞이하다.


18세기 향수는 향수 역사의 전성기로 당시 향수는 패션, 문화, 사회적 변화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프랑스에서 미의 기준은 우아함, 세련됨, 자연미로 변화하고 있었고 세련된 여성성과 상류층의 풍요로움을 상징하는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았습니다. 

향수는 몸의 향기를 통해 내면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외적인 세련됨과 우아함을 표출하는 수단으로 여겨졌습니다.

당시의 귀족들은 향수 없이 외출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향수의 사용은 일종의 의례적, 사회적 의무였습니다.


하지만 역사상 가장 화려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정도로 바로코와 로코코 시대의 이 시기에는 향수 역시 눈부신 발전과 악취를 감추기 위한 목적으로도 사용되었는데 그 발단은 마리 앙투아네트에 이르러 절정을 이룬 머리스타일 '퐁탕주' 때문이었습니다. 그 당시 상류층이 귀부인 여성들은 딱딱한 리넨 또는 레이스를 주름잡아 철사로 지지하여 1m가 넘는 거대한 높이로 부채를 편 듯한 모양으로 자랑하였는데 여기에 나무판 또는 과일, 인형, 모형 배 등 머리에 얹어 부를 과시하였던 시절이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귀부인들은 머리 치장함에 오랜 시간을 투자하며 최소 열흘에서 길게는 3개월까지 머리를 감지 않다 보니 겉보기에는 화려해 보이지만 장식용품인 황금으로 만든 비녀나 상아 비녀로 가려운 머리를 긁는 용도로 사용하였다.

 

이러다 보니 화려한 헤어스타일 속에 악취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보니 악취를 덮어버리기 위한 용도로 향수를 달고 다니며 수시로 뿌리는 모습이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고 합니다.

루이 14세 역시 마찬가지로 그 중의 하나였는데 퐁탕주를 연출할 일은 없었지만 평생 목욕을 2번밖에 하지 않았다고 할 정도로 청결과는 거리가 먼 왕이었고 그이 몸에서 나는 불쾌한 냄새를 감추기 위해 향수를 늘 휴대하고 다녔다고 합니다.

그의 신하들 역시 루이 14세 왕을 접견하기 위하여 그의 악취에서 벗어나고자 향수를 뿌린 손수건으로 코를 막으며 접견했다는 설도 있었습니다. 지금과는 대조적이지만 당시 파리 시내는 미숙한 하수구 시설과 화장실 배수 시설은 위생과는 거리가 먼 주거 환경이었다고 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향수의 메카인 프랑스 파리에서 '향기롭지 못한 (?) 배경'에서 향수의 고장, 메카, 그리고 프랑스 화장품 산업의 기틀이 되었습니다.
이후 프랑스의 향수는 세계에서 가장 기품 있고 권위를 지니게 되었고 18세기 후반 우비강이나 게렝과 같은 유명한 향수 메이커를 탄생시켰습니다.

 

 

18세기에는 향수 제조 기술이 혁신적으로 발전했습니다.

알코올 기반 향수의 등장으로 향수의 지속력과 발산력이 획기적으로 개선되었습니다.

이전에는 오일과 같은 기름을 기반으로 했던 향수와 달리, 알코올이 결합되면서 향수의 향기가 더 오래 유지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향수 브랜드의 시대적 배경

 

향수의 상업화와 대중화가 이루어지면서, 특정 브랜드들이 향수 시장을 이끌기 시작하였고 18세기 말은 향수 브랜드들이 탄생하기 시작한 시점이 되었습니다. 프랑스는 향수의 본고장으로, 왕실과 귀족들 사이에서 향수는 필수품이라 할 정도로 

프랑수아 코디 (François Coty)는 향수 산업의 상업적 혁신을 이끈 인물로 현대적 의미로 브랜드화되어 디자인, 브랜딩, 마케팅을 조화롭게 결합하여 향수의 고급화로 자리매김하였습니다.

이때, 프랑스의 향수 조향사들은 귀족들과 왕실의 적극적인 후원을 받으며 향수 브랜드를 세련된 이미지로 성공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18세기말 경에 향수 브랜드를 창립하며, 특히 패션과 향수의 융합을 강조했습니다.

이로써 향수는 패션과 일체화되었고, 귀족 사회뿐만 아니라 상류층 전반에서 중요한 소비 품목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향수의 사회적 의미와 상징성

 

  • 성별과 향수: 여성은 일반적으로 프로럴인 꽃향기와 푸르티 한 과일향을 선호하며, 이러한 향수는 여성의 섬세한 성격과 우아함을 드러내는 역할을 하였고 남성은 시더우드, 머스크와 같은 더 강하고 우디 한 향을 선호했습니다.
    이는 당시의 성역할과 기대를 반영하였지만 시대가 지나도 현시대인 지금 역시 향수의 성별 선호도는 변함이 없는 듯합니다.

  • 사회적 계급: 향수는 귀족이나 부유한 상류층만의 특권이었으며, 그 사용은 계급을 명확히 구분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향수를 사용하는 것은 그 사람이 상류층임을 나타내는 하나의 지표였고, 그 자체로 부유함과 세련됨의 상징이었습니다.

 

이렇게 18세기 향수는 단순한 아름다움을 넘어서, 그 시대의 사회적, 문화적 맥락을 반영하는 중요한 아이템이 돠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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